기억배달우체국 프로젝트, 
그 시작

“우체국이 기억을 배달한다고요?” 처음엔 웃으며 지나갔던 한마디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우체국은 지금, 기억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동아DB
2025년 5월 7일, 김홍재 이사장이 우체국공익재단에 부임했습니다. 첫인사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됐습니다. “우체국이라는 자원으로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요?”

질문은 곧 아이디어가 되었고, 아이디어는 하나의 이름으로 피어났습니다. 바로 ‘기억 배달부’ 윤승택 선임이 처음 제안한 이 사업은 지역의 문화유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기억을 다시 사람들에게 배달 하는 공익플랫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헌미 국장이 책(『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 입니다』)를 펼쳤습니다. 앨버트 테일러, 그가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순간이었습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잖아요. 우리가 처음으로 배달할 기억은 이런 인물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용한 제안이 조용히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딜쿠샤’라는 붉은 벽돌집이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도보 4분 거리라는 사실을. 기억은 이미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기억을 다시 꺼내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건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우리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그 제안에 김보람 부장과 정지빈, 정다솔 선임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아요. 이건 우리 일 같아요. 우체국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기획안보다 먼저 움직인 건 마음이었습니다. 신속하지만 단단하게, 그렇게 단 일주일 만에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김홍재 이사장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우체국다운 일이네요.” 새로운 리더십은 새로운 질문을 만듭니다. 좋은 질문은 생각을 이끌고, 생각은 사람을 불러옵니다. 사람이 있었고, 우체국이 있었고, 그 사이에 ‘기억’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놓였습니다.

『기억배달우체국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콘텐츠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각,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 그리고 한 조직의 리더십이 만든 우체국 공공성의 새로운 방식입니다. “기억도 배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말합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우체국은 기억을 배달합니다.”